'사탄의 성경'으로 번역되는 코덱스 기가스 (Codex Gigas) 는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필사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왜 이 필사본이 사탄의 성경이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사탄의 성경은 기독교의 성경과 무엇이 다른지, 사탄의 성경에 적힌 내용은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코덱스 기가스는 문자 그대로 거대한 필사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Codex 가 성서나 고전 등 중요 서적의 필사본을 뜻하고, Gigas 는 형용사로 거대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컴퓨터 용량을 나타내는 기가바이트의 '기가'가 동일 어원을 갖는 말이다.) 일단, 코덱스 기가스, 사탄의 성경, 사탄의 경전, 악마의 성경, 악마의 경전, 거대 필사본 같은 말들이 동일한 것을 지칭하는 상이한 이름이라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원어로 따질 때에는 "사탄"이라는 가치평가적인 말이 들어 있지 않는데 비해 이 말이 영어로 번역되고 우리말로 건너 올 때에는 "사악한 기운이 서려있다"는 뜻을 담는 사탄의 성경이라는 책 제목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누가 처음 이런 식으로 "가치개입된 번역"을 하였는지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사탄의 성경>이라는 말에는 다소 어폐가 있기 때문에 <사탄의 경전>으로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성경이 품목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이 전체 볼륨의 한 부분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중구난방 여러 갈래로 뻗어져 있지만 몇 가지 주제로 질문을 만들어 거기에 대답해 보겠다. 이하의 내용은 위키피디아를 반번역하다시피한 것이다. 이것을 기초로 하여 다른 몇 가지 문서를 참고한 후 나름대로 유연하게 옮겨 보았다.

먼저,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이 책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가?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 책은 모든 내용이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담고 있다.
1) 전(前)불가타 라틴어로 기록된 신구약 성경 (the entire Latin Bible in a pre-Vulgate version)
2) 세빌(Seville)의 대주교였으며 당시 석학으로 알려졌던 스페인의 이시도르의 어원사전 (Isidore of Seville(Isidore of Seville's Etymologiae)
3)  유태역사 권위자인 푸라비오스 죠셉파스의 20권의 유태 민족의 고대사 “The Antiquities of the Jews” (Flavius Josephus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4) 연대기를 쓴 프라하의 코스마에 의해 작성된 보헤미아 연대기 (Cosmas of Prague's Chronicle of Bohemia)
5)  역사, 어원, 생리학 주제를 다룬 다수의 소책자 (various tractates (from history, etymology and physiology)
6) 사망자 명부를 담은 달력 (a calendar with necrologium)
7) 체코공화국 크라스트 (Chrast) 지방에 있는 포드라지스 (Podlažice) 수도원 수도사들의 명부 (a list of brothers in Podlažice monastery)
8) 마법 약전 (처방 공식) (magic formulae)
9) 기타 지방 관련 기록물 (other local records)

아울러, 이 필사본은 적, 청, 황, 녹, 금 색의 다양한 색채 장식이 활용되었다. 또한 대문자 (단순히 크기가 큰 글자를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더욱 정교하고 세심하게 장식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씌어진 필사본은 필사자의 건강 상태나 연령으로 인해 필사문의 모양도 바뀌어 가기 마련인데, 코덱스 기가스에 기록된 글은 초지일관 통일성 있는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이것 때문에 하루 만에 씌어졌다는 전설이 붙은 건지도 모른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일관성 있는 필사문 형태는 이 필사본이 단시일에 씌여졌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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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에 사용된 색채 장식들

전체 페이지는 290 페이지에 달하며, 여기에는 길이 50센티미터의 독특한 형상의 마귀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마귀 그림 이전 페이지 내용의 일부분은 검은 도료가 칠해진 송아지 가죽 위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필사본의 나머지 부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형태로 글씨가 씌어져 있는데, 그 형태가 매우 암울한 느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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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살펴 본 사탄의 성경

둘째, 이 책의 형태는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는가? 크기는? 무게는? 상태는?

코덱스 기가스는 목재 폴더 속에 보관되어 있으며, 본 책은 가죽으로 덮여 있고 철제 장식물이 부착되어 있다. 이 필사본의 크기는 세로 92 cm, 가로 50 cm, 두께 22cm 인데 중세의 필사본 중에는 가장 큰 크기로 알려져 있다. 현대서적과 이 책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어떻게 책 한권에 앞의 방대한 내용이 모두 포함될 수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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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50, 세로92, 두께 22 의 위용 (오른 페이지 사탄 삽화)

이 책에는 원래 320 장의 송아지 가죽 (피지, 아마 송아지가 아니라 당나귀 가죽을 사용한 듯) 내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 여덟 장이 누군가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 사라진 여덟 장의 가죽 내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는가 하는 점이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는데, 대체로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의 수도원 규정이 적혀있었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 필사본의 무개는 75kg 이며, 이만한 분량의 내피지를 마련하려면 160 마리 정도의 당나귀 가죽을 벗겨야 한다.

세째, 이 필사본이 전래된 역사는?

이 필사본은 체코의 크러딤 인근 포드라지스 (Podlažice) 에 소재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제작되었다. 크러딤으 15세기 무렵 파괴된 도시이다. 필사본에 기록된 마지막 기록연도는 1229년이다. 나중에 이 필사본은 시토회 (Cistercians) 소속의 세드렉 수도원으로 이전된 후 브레브논 (Břevnov) 의  베네딕트 수도원이 구입하였다. 이 책은 1477년부터 1593년 사이에는 브로우모프 (Broumov) 수도원의 도서관에 보관되었으며 1594년이 되어서야 루돌프 2세의 소장용 수집품으로 프라하에 들어 오게 된다.

1648년 30년 전쟁의 막바지에 루돌프 2세의 소장품은 스웨덴군이 전리품으로 모두 가져가 버렸다. 그리하여 1649년 이후에는 전체 컬렉션이 스웨덴 왕립 도서관에 보관되기 시작했다. 체코 크라스트 지방의 마을 박물관에는 이 책 제작 장소를 표식하는 모형 본이 있다고 한다. 올해 이 필사본은 6주간의 짧은 귀향을 허락받아 체코의 프라하에서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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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박물관 웹사이트에 적혀 있는 서지 (클릭 후 확대)

네째, 이 필사본에 얽힌 전설은?

전설에 의하면 이 필사본을 쓴 사람은 수도승이었다고 한다. 이 수도승은 수도원 규율을 어긴 죄로 산 채로 벽 속에 감금되는 벌을 받았다. 이 가혹한 형벌을 참아내기 위해 수도승은 수도원의 영광과 인간 지식의 영광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책 한권을 하룻밤 사이에 쓰기로 서약한다. 그러나 자정이 가까와 오면서 이 수도승은 자신의 서약을 혼자 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고민 끝에 수도승은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악마는 그 청을 받아들여 필사본을 완성시켰고 수도승은 악마의 도움에 사의를 표하기 위해 악마의 그림을 필사본 속에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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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덱스 기가스에 그려져 있는 사탄. "가와이" (귀엽다!) 는 게 중평이라니...

참고로 덧붙이면,

1) 국내 언론에 실린 사진들은 맥락없이 배열되어 왜 이 사진을 보여주는지 알 수 없다. 동일한 사진들이지만 그것을 내용과 관련지어 가급적 의미가 살아나는 방향으로 배열해 놓았다.

2) 위키피디아의 항목을 상당 부분 참고하여 번역하다시피 작성한 포스팅이지만 한글로 된 문서 중에 <사탄의 성경>에 관해 이만큼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웹문서는 아직 없다고 보아도 좋다. 그건 번역하다시피 적었건 순수창작물이건 마찬가지다. 다만 한가지 기억해야할 것 (이것은 위키피디아의 모든 항목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은 위키피디아의 내용이 우리 공부의 종착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키피디아를 둘러싸고 생기는 온갖 불필요한 논쟁 (Validity, Reliability, Credibility, etc.) 은 바로 위키피디아를 종착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요 논쟁이다. 위키피디아를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는 한 이런 논쟁을 발붙일 곳이 없다. 우리가 발딛고 선 출발점은 피어 리뷰 저널의 권위 (사이언스를 보라) 에 의존하건 가짜 학자들이 작성한 위키피디아의 문서가 되건 모두가 가설적이고 미확정적이다. 모두가 출발점일 뿐이다. 그런 한 어느 문서가 다른 문서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고 따지고 앉아 있는 것은 최종적인 지식의 완전성 (그런 것은 없다, 그러면서도 그런 것은 있다고 말해야 옳다. 왜 그런지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에 비추어 볼 때 무의미하다. 그럴 바에는 불확실한 것이든 확실한 것이든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자료를 붙잡고 끝 닿을 곳 보이지 않는 씨름을 시작하는 게 더 낫다. 아마 책 몇권이라도 진지하게 읽고 자기 생각을 만들어 보려 애쓴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 이 책이 보관되어 있는 스웨덴의 도서관을 가려면, Kungl. biblioteket, Sveriges nationalbibliotek, Sweden

Written by 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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